세줄평 & 추천도

야쿠쇼 코지의 내면을 섬세하게 드러내는 연기와 벤더스 감독의 여백 있는 연출이 만나, 느리지만 깊이 있는 감동을 선사하는 작품. 우리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거울이 되어줄 것이다.

평가: 4/5

오랜만에 극장에서 경험한 진정한 영화적 순간이었다. 빔 벤더스의 ‘퍼펙트 데이즈’는 언뜻 보기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영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바로 그 ‘무(無)’의 공간에서 가장 본질적인 ‘유(有)’를 발견하게 한다.

의도된 단순함

퍼펙트 데이즈-히라야마

주인공 히라야마는 도쿄의 공중화장실 청소부다. 영화는 그의 단조로운 일상을 느긋하게 좇는다. 한 청소부의 하루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영화를 끝까지 본 관객은 자문하게 된다. 우리가 의미 있다고 여기는 것들은 정말 의미가 있는 것인가?

히라야마의 세계는 철저히 미니멀하다. 작은 원룸, 몇 권의 책, 카세트 테이프, 오래된 필름 카메라. 디지털 세상과 거리를 둔 그의 생활은 현대인들에게 이질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 발견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가 잃어버린 삶의 리듬이다.

코모레비: 차단된 세계로 스며드는 빛

퍼펙트 데이즈-히라야마

그러나 영화가 단순히 미니멀리즘을 찬양하는 데 그치지 않는 이유는, 히라야마라는 인물의 내적 여정을 섬세하게 포착하기 때문이다. 그의 규칙적 일상은 자기보호의 수단처럼 보인다. 외부와의 접촉을 최소화하고, 감정의 동요를 억제하려는 듯한 태도. 그러나 이 단단한 껍질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특히 조카 니키와의 만남은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지금은 지금이고, 다음은 다음”이라는 히라야마의 말은 겉으로는 현재에 충실하자는 의미로 들리지만, 동시에 과거와의 단절을 암시한다. 상처받기 쉬운 관계보다는 혼자만의 세계에 안주하려는 심리.

퍼펙트 데이즈-니키와 히라야마

벤더스 감독은 이 내면의 변화를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코모레비(木漏れ日)’라는 시각적 모티프를 활용한다. 히라야마가 반복적으로 촬영하는 나뭇잎 사이로 새어드는 햇빛은 단절된 세계에 스며드는 타자의 존재를 상징한다. 닫힌 체계에서 열린 체계로의 이행 과정인 셈이다.

수용과 해방의 순간

퍼펙트 데이즈-포스터

영화의 백미는 마지막 시퀀스에서 펼쳐지는 히라야마의 감정 변화다. 그간 억눌렸던 감정이 웃음과 눈물로 터져 나오는 순간, 우리는 목격한다 – 자기보호의 단단한 껍질을 깨고 세상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한 인간의 모습을.

‘퍼펙트 데이즈’는 아무것도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어떻게 우주적 의미를 담을 수 있는지 보여준다. 완벽함이란 결국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된다는 역설.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그 일상을 어떤 태도로 대할 것인지에 대한 깊은 사유를 불러일으키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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