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줄평 & 추천도

‘미키 17’은 시각적으로 압도적이며 로버트 패틴슨의 1인 2역 연기가 빛나는 작품이다. 그러나 복제 인간이라는 흥미로운 SF 소재가 가진 철학적 가능성을 충분히 탐구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 봉준호 감독의 메시지는 명확하지만, 때때로 전작에서 보여준 주제의 반복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평가: 3/5

기대와 실망 사이

지난 주말, 기대감을 안고 봉준호 감독의 ‘미키 17‘을 관람했다. 애초에 에드워드 애슈턴의 소설 ‘미키 7’에 매료되어 원작을 읽고 영화를 봤는데, 솔직히 말해 기대와 달리 미묘한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었다.

영화는 복제 기술이 발달한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위험한 임무를 전담하는 ‘소모품’ 인간 미키가 자신의 18번째 복제본과 마주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흥미로운 전제인데, 내용은 다소 밋밋했다.

두 자아의 만남: 패틴슨의 빛나는 이중 연기

미키 17-미키 반스

가장 인상적인 건 패틴슨의 연기다. 미키 17이 순응적이고 소심한 모습을 보이는 반면, 미키 18은 자신감 넘치고 과감하다. 수많은 죽음과 복제 과정에서 미키 17은 점차 자신의 본래 성격을 잃고 시스템에 순응하는 존재가 되었지만, 갓 복제된 미키 18에게는 그런 순응의 과정이 없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반복되는 계급 투쟁

미키 17-마샬

봉준호 감독은 여전히 계급 의식에 주목한다. 소모품 취급받는 미키는 우주 개척을 위해 희생되고, 상류층은 그 혜택을 누린다. 마샬과 카이의 대조되는 식사 장면은 이런 계급 분화를 명확히 보여준다. SF 요소는 형식적으로만 도입된 느낌이었고, 복제 인간이라는 소재가 품은 정체성과 인간성에 대한 질문을 더 깊이 파고들지 못했다. 대신 봉준호 감독이 익숙한 계급 투쟁 내러티브로 흘러간다.

압도적 시각미, 늘어지는 전개

미키 17-미키 반스-2

시각적으로는 압도적이다. 니플하임의 설원과 기지 내부의 디자인, 복제 과정의 시각화는 모두 뛰어나다. 음악과 몰입감 있는 카메라 워크도 좋았다. 하지만 이야기 전개는 중반부터 늘어지기 시작하고, 코미디 요소도 기대만큼 웃음을 주지 못한다. 결말도 다소 급작스럽게 마무리되어 주인공의 변화와 깨달음이 충분히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할리우드의 봉준호 애매한 위치

미키 17-봉준호

복제 인간이라는 소재를 충분히 탐구하지 못했고, 중반부부터 개연성이 부족한 부분이 아쉽다. 전반적으로 ‘봉준호 영화’와 ‘할리우드 SF’ 사이에서 애매하게 걸친 느낌이다. 그럼에도 패틴슨의 연기와 특유의 비주얼, 몇몇 인상적인 장면들은 볼만하다. 다만 ‘기생충‘이나 ‘옥자‘ 같은 전작의 파격과 창의성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 있다.